〈옛것과 새것〉 다음에 읽을 것들
754호 '공동선을 위한 AI'에서 다뤘던 〈옛것과 새것Antiqua et Nova〉을 읽고 나니 여지 없이 더 읽어야 할 것들이 생겼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가톨릭의 '사회교리', 즉 "인간이 겪는 좌절과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에 관한 글, 문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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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랫동안 세계 각국을 뒤흔들어 온 혁명적 변화의 기운이 정치 영역을 넘어 그와 밀접히 연관된 실천적 경제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금 타오르고 있는 갈등의 요소들은 분명히 드러나 있다. 산업 활동의 광대한 팽창과 과학의 놀라운 발견들, 주인과 노동자 사이의 변화된 관계, 극소수 개인들의 막대한 부와 대중의 극심한 빈곤, 노동 계층의 높아진 자립심과 더욱 긴밀해진 상호 결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연한 도덕적 타락이 그것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의 심각한 무게는 모든 이의 마음을 고통스러운 불안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현명한 이들은 이를 논의하고, 실천적인 이들은 방안을 제시하며, 민중 집회와 입법 기관, 각국의 통치자들 모두가 이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 실로 이보다 더 깊이 공공의 정신을 사로잡은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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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대한 인간성〉의 네 번째 문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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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레오 13세가 자신의 시대에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 우리는 그의 통찰력 있는 가르침을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우리 시대의 큰 흐름들, 특히 기술 발전을 해석하는 지혜를 하느님께 구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디지털화, 인공지능(AI), 로봇공학이 우리 세계를 얼마나 빠르고 심오하게 변화시키는지가 점점 더 분명해졌다. 기술은 그 자체로 인류에 적대적인 힘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은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에 연결된 깊이 있는 인간적 현실"로서 태초부터 우리 역사의 일부를 이루었다. 수세기에 걸쳐 기술 발전은 인류의 생활 조건을 크게 향상시켰다. 동시에 각 진보의 단계는 선을 향해 방향 잡히지 않을 때 해를 끼칠 수 있는 도구들의 양면성도 드러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신기술의 힘과 편재성은 일상 생활의 직물 속에 짜여들어, 의사결정 과정을 형성하고 집단적 상상력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인류는 이토록 자기 자신에 대한 권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새로운 기술들은 상상 가능하지만 아직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지평을 열어준다. 이로 인해 그것들이 개인의 존엄성과 공동선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과 장기적 효과를 평가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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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 사회의 극심한 변화와 그로 인한 위기가 동시에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전개합니다.
〈위대한 인간성〉을 계기로 가톨릭 사회교리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건 AI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잡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상황을 해석할 뿐이고, 책임과 윤리에 대한 목소리는 잡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실로 인간과 사회를 위한 것은 무엇일지에 관해 가톨릭의 지혜를 빌려보기로 했습니다. 가톨릭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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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이 215개인 〈옛것과 새것〉만 해도 연결된 자료들이 넘쳐나는데, 그 중 선별했습니다. 반복해서 인용되고 제 마음에 남은 내용의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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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과 새것〉이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기간 중 나온 문서라 특히 많이 인용됐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용된 내용들을 더 깊이 읽고 싶었습니다.
제가 '회심(回心)'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만, 이곳에 지혜의 조각이 있다면 기꺼이 기웃거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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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y Rich, 'Nutville'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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