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2018)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11월 7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고 한다.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문학동네에서 2018년에 출간한 《프랑켄슈타인》 200주년 기념판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읽어봐야겠다. 이 천재 감독은 원작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비교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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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이야기는 특히 우리 감정의 층위에 깊이 새겨진다: 오싹한 전율 하나하나를 통해 우리는 통찰을 얻는다." — 기예르모 델 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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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이 200주년 기념판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문학동네 홈페이지에도, 인터넷 서점에도 없다. 그래봐야 표지만 다를 뿐일텐데, 흉칙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고통 받는 그 '괴물'처럼 숨기고 싶은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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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지음), 김선형(옮김), 문학동네, 2018(출간 200주년 기념판) Mary Shelley, Frankenstein: or, The Mordern Prometheus (1818, 초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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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소설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이 원작을 얼마나 마음껏 또는 멋대로 해석했는지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으나 —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주인공의 이름이다"부터 시작해서 — 실상은 내 예상을 넘어섰다. 전혀 다른 소설이었다.
소설의 원제목 전체는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다. 보통 생략되곤 하는 이 제목의 뒷부분,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 집중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다들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티탄(Titan)족의 신 중 하나로 최초로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제우스의 심기를 거슬린 죄과로 산에 쇠사슬로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되는 그런 신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프랑켄슈타인일까, 괴물일까? 처음에는 당연히 괴물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리 셸리의 의도도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통 받는 존재라는 측면에서는 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설 대부분은 그 둘의 고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다행히 둘 모두 프로메테우스와는 달리 죽을 수 있는 존재였지만, 서로를 향한 복수를 끝마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그러나 둘은 결국 무간지옥으로부터 뛰어내려 안식을 찾는다.
메리 셸리는 신에게 따지고 싶었을까. 인간을 고통 속에 내버려 두지 말고 창조한 책임을 다하라고 말이다. 메리 셸리가 21세에 출간한 이 소설에는 그가 겪은 고통들 — 자식들의 죽음, 가족의 자살 등 — 이 드러나 있다. 그는 고통에 '간을 쪼이면서' 계속 글을 썼다. 복수할 대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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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주로 관심을 갖는 사건은 단순한 귀신이나 주술 이야기가 드러내는 맹점에서 벗어나 있다. 전개되는 상황이 새롭다는 점을 좋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물리적 사실로서는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할지언정 인간의 열정을 그려내는 상상력 면에서 보자면 실재하는 사건을 서술하는 그 어떤 평범한 이야기보다 더 포괄적이고 설득력 있는 시각을 지니기 때문이다."
— 영국 시인·메리 셸리의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 '서문' 중, 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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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토로 감독이 새로 출간되는 펭귄 클래식 《프랑켄슈타인》에 서문을 썼다. 영리하게도 영화 공개에 맞춰 출간하는 것 같다. 이 서문은 〈아틀란틱〉에 '왜 기예르모 델 토로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일곱 살 무렵부터 판타지문학을 수집"한 매니아답게 '공포'에 대한 그만의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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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배운다는 건, 곧 우리가 누구인지를 배운다는 것이다. 공포는 우리의 경계를 규정하고 영혼을 비춘다. 그런 의미에서 공포는 유머만큼이나 논쟁적이고, 성(性)만큼이나 내밀하다. 우리가 특정한 공포 이야기를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방식은 각자의 공포증이나 페티시처럼 특이하다. 공포는 하찮은 재료로 만들어지기에 쉽게 무시당한다. 그러나 나는 이 장르 안에 물질주의적 세계에서 남은 마지막 영성의 피난처 중 하나가 있다고 믿는다."
— 출처: 〈The Atlantic〉, 위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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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두 가지 판본이 있다. 1818년 초판과 1831년 개정판인데, 델 토로와 한국어판 번역자(김선형) 모두 초판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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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판은 더 정제되고 구조적이지만, 나는 첫 판을 사랑한다. 거칠고 제멋대로이며, 세상을 향한 청춘의 분노와 절박함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한 미스터리가 살아 있다. 마치 〈욥기〉가 인간의 욕망과 지각을 무한과 영원에 견주는 것처럼." — 기예르모 델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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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원본으로 쓴 텍스트는 1818년의 초판임을 밝혀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리 셸리가 대대적으로 개정한 1831년 판본을 연구와 번역의 원전으로 쓰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1831년에 메리 셸리가 원래의 작품 구상과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학계가 1818년 초판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 김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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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삶에 깊은 연민을 느끼며,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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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Rea, 'September Blue' (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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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touched the stars at midnight The whole world seem to shout 'hello' Now your throat is tired and heavy And only one can 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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